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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화재와 판결

by 헥토스토리 2026. 4. 22.

2024년 6월 24일 오전 10시 30분. 경기도 화성시의 작은 배터리 공장에서 불이 났다. 발화 42초 만에 2층 전체가 연기로 뒤덮였다. 23명이 숨졌다. 1심 법원은 이것을 "예고된 인재"라고 했다. 그리고 2심 법원은 대표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1. 아리셀이라는 회사

아리셀은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산업단지에 있는 리튬 1차전지 제조업체다. 코스닥 상장사 에스코넥의 계열사였고, 대표는 박순관, 실질적인 현장 경영은 그의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이 담당했다.

1차 리튬 전지는 우리가 흔히 아는 스마트폰 충전 배터리(2차전지)와 다르다. 가스·수도·전기 계량기, 무선 경보기, 군사용 장비 등에 들어가는 한 번 쓰고 버리는 배터리다. 아리셀은 이 전지를 국방부 방위사업청에 군용으로 납품하는 계약을 맺고 있었다.

리튬 1차전지는 일반 배터리와 차원이 다른 위험물이다. 화재가 나면 물로 끌 수 없고, 열폭주가 한 번 시작되면 옆에 있는 전지로 연쇄 폭발이 번진다. 사고 당시 공장 2층에는 이런 전지가 3만 5,000개 쌓여 있었다.


2. 사고 전부터 쌓인 위험 신호들

화재는 갑자기 일어나지 않았다. 사고 수개월 전부터 경고는 계속 울리고 있었다. 아리셀은 그것을 하나도 듣지 않았다.

① 군납 시료 바꿔치기 — 모든 것의 시작

2024년 1월, 아리셀은 방위사업청과 군용 전지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품질 검사가 시작됐고, 경영진은 불합격을 우려해 검사용 시료를 합격품으로 몰래 바꿔치기하고 데이터를 조작했다. 현장 점검 담당자가 이를 적발해 시정조치를 요구했지만, 재차 실시된 검사에서도 국방규격 불일치 판정을 받았다.

결국 4월 납품분 전량을 재생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하루 70만 7,168원의 지체상금이 부과되기 시작했다. 사고 당일인 6월 24일까지 쌓인 지체상금만 3,800만 원이 넘었다.

② 무리한 생산 목표와 비숙련 인력 대거 투입

납기를 맞추기 위해 회사는 평소의 2배인 하루 5,000개 생산이라는 목표를 밀어붙였다. 5월부터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 53명을 불법으로 추가 공급받아 안전교육도 없이 주요 공정에 바로 투입했다. 6월에만 60여 명의 인력이 단기 추가 투입됐다.

비숙련공이 쏟아지자 불량률이 폭발적으로 올랐다. 3~4월 평균 2.2%였던 불량률이 5월 3.3%, 6월엔 **6.5%**까지 치솟았다.

③ 발열 전지 경고를 무시하다

5월 중순, 원인 모를 발열 전지가 다수 발생하기 시작했다. 공장 연구소 관계자는 경영진에게 **"해결 방법을 찾으려면 6개월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아리셀은 이를 무시하고 생산을 계속했다.

④ 이틀 전 폭발사고, 신고도 안 했다

화재 이틀 전인 2024년 6월 22일, 공장 2동 1층에서 발열 전지 한 개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리셀은 이 사고를 자체 수습하고 소방서에 신고하지 않았다. 폭발이 일어난 작업장의 노동자들은 자리를 옮겨 작업을 이어갔다. 폭발한 전지와 함께 생산된 전지들은 3동 2층으로 옮겨졌다.

이틀 뒤인 6월 24일, 원인 규명도 추가 조치도 없이 공장은 그대로 돌아갔다.


3. 2024년 6월 24일 — 화재 당일

오전 10시 30분. 아리셀 공장 3동 2층, 쌓여 있던 리튬 전지에서 연쇄 폭발이 시작됐다.

발화 42초 만에 2층 전체가 연기로 가득 찼다. 작업자들은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탈출이 불가능했던 구조

당시 공장 2층엔 바깥으로 통하는 출입문과 비상구, 두 개의 문이 있었다. 그러나 둘 다 쓸 수 없었다.

출입문은 발화 지점과 가까워 불이 붙은 뒤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비상구는 더 충격적이었다. 작업장에서 비상구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 문이 있었는데, 이 문은 ID카드를 찍거나 지문을 눌러야만 열리는 보안 문이었다. 그런데 이 권한은 정규직에게만 주어져 있었다. 일용직으로 파견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ID카드도, 등록된 지문도 없었다.

실제로 정규직 직원 한 명이 ID카드를 대고 이 문을 열면서, 내국인 사무직 대부분이 탈출할 수 있었다. 작업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은 문을 열 방법이 없었다.

거기에 더해 공장 내부 구조도 문제였다.

  • 방화구획을 위한 벽이 임의로 철거돼 불길이 더 빠르게 번졌다
  • 완성된 전지 제품이 출구 쪽에 쌓여 있어 탈출 경로가 막혔다
  • 리튬 배터리는 폭발할 때 염화티오닐 등 유독 가스를 내뿜는데, 이에 대한 사전 경고나 방호 장비가 없었다

사망자 현황

결국 23명 사망, 8명 부상. 사망자 23명 중 18명이 외국 국적자였다. 라오스인 1명, 나머지는 중국 동포와 중국인 결혼이민자였다. 17명이 여성이었다. 사망자 20명은 파견 노동자였다. 부부가 함께, 자매가 함께 변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생존해 탈출한 20명은 대부분 정규직 사무직 내국인이었다.


4. 수사로 드러난 아리셀의 민낯

경찰·노동부 수사 결과 드러난 실태는 참혹했다.

불법 파견 구조: 아리셀은 제조업체라 법적으로 파견 근로자를 쓸 수 없다. 하지만 인력업체 한신다이아(메이셀)로부터 외국인 노동자를 공급받았다. 이는 명백한 불법 파견이었다. 심지어 노동자 중 일부는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않고 일했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노동자 321명에 대한 임금체불까지 추가로 드러났다.

안전관리 형식화: 아리셀은 매년 적자가 발생하자 안전·보건 예산을 줄이고 담당 부서 인력을 감축했다. 전지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는 직원을 형식적인 안전 관리자로 앉혀뒀다. 위험성 평가는 2023년엔 실시조차 하지 않고 실시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했다.

언어 장벽: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은 리튬 전지의 폭발 위험성을 전혀 교육받지 못했다.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설령 안내가 있었다 해도 한국어로만 이뤄져 이해할 수 없었다.


5. 재판 — 1심, 중대재해법 역대 최고형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박순관 대표, 박중언 본부장 등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파견법 위반 등 다수 혐의로 기소됐다.

2025년 9월 23일, 1심 선고.

수원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고권홍)는 박순관 대표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 이후 내려진 역대 최고 형량이었다. 그 이전까지 같은 법으로 선고된 최고형은 고작 징역 2년이었다.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에게도 징역 15년에 벌금 100만 원이 선고됐다. 임직원 5명에게는 징역 2년, 금고 1~2년 등이 각각 내려졌다. 박 대표를 포함해 실형을 받은 5명은 법정에서 즉시 구속됐다.

재판부는 2시간 동안 판결문을 직접 낭독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 화재 사고는 예측 불가능하였던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언제 터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던 예고된 인재였다. 그 이면에는 기업의 생산량 증대에 따른 이윤 극대화를 앞세워 노동자의 안전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방치되고 있는 우리 산업 구조의 현실이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한국 산업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기업가는 피해자와 합의한 다른 기업가가 선처받는 것에 대한 학습효과로 이윤 극대화에만 몰두한다. 이런 악순환을 뿌리뽑지 않는 한 우리나라 산업재해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1심 판결에 유가족들은 "혐의 대부분을 인정한 것은 다행이지만, 15년도 아직 부족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검찰은 당시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6. 2심 — 2026년 4월 22일, 대폭 감형

박순관 대표는 1심 선고 이틀 만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2심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 지위를 부인하고 사고와의 인과관계를 다퉜다. 검찰은 2심 결심공판(2026년 3월 27일)에서 박 대표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2026년 4월 22일, 수원고등법원 제1형사부의 2심 선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박순관 대표 — 징역 15년 → 징역 4년

2심 재판부는 박 대표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1심보다 무려 11년이 줄어든 대폭 감형이었다.

재판부의 핵심 논리는 이랬다.

첫째, 1심이 박 대표에게 '안전·보건에 관한 경영방침 설정 의무' 위반을 인정한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의무의 내용은 추상적인 목표와 경영방침을 설정한 것이어서, 인명 피해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둘째, "리튬 1차전지에 대한 국내외 각종 연구결과와 현재의 기술 수준에 비춰 재해 발생을 완벽히 막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셋째, "박 대표가 위험성을 외면하고 이익 추구에만 몰두했다거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완전히 방치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넷째, 박 대표가 피해자 유족 전원에게 배상하고 상해 피해자들과 모두 합의한 점을 양형 이유로 들었다.

사실상 박 대표 측이 항소심에서 주장한 "명목상 대표이사에 불과했다"는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진 것으로 해석된다.

박중언 총괄본부장 — 징역 15년 → 징역 7년

아들 박중언 본부장도 징역 7년에 벌금 100만 원으로 크게 감형됐다. 다만 재판부는 박 본부장에 대해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근무할 환경을 구축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의무를 부담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책임의 정도가 박 대표에 비해 무겁다"고 판단했다. 아버지보다 아들에게 더 무거운 실질적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임직원 3명 — 집행유예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아리셀 임직원 3명은 2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7. 충격적인 감형, 무엇이 문제인가

이번 2심 판결은 유가족과 노동계에 큰 충격을 줬다. 비판의 핵심은 세 가지다.

① "합의하면 감형"이라는 관행의 재현

1심 재판부가 직접 경고했던 악순환이 현실이 됐다. 유족과의 합의가 형량을 11년이나 줄이는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 '돈을 주면 살인도 선처받는다'는 메시지가 산업현장에 다시 한번 퍼지게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②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 논란

이 법의 핵심은 '최고경영자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런데 2심은 박 대표의 경영방침 설정 의무와 인명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했다. 경영자가 추상적 경영방침만 세우면 직접적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다.

③ "리튬전지는 막기 어렵다"는 논리의 위험성

재판부가 "리튬 1차전지의 재해 발생을 완벽히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한 부분도 논란이다. 이 사고는 기술적 한계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틀 전 폭발이 있었고, 비상구는 막혀 있었고, 교육은 없었다.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는 게 1심의 결론이었다.


8. 이 사건이 남긴 것들

위험의 이주화

사망자 23명 중 18명이 외국 국적자였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산재 사망률은 내국인의 3배가 넘는다. 가장 위험한 일, 가장 劣한 노동 조건, 가장 취약한 법적 지위를 가진 이들에게 몰리는 구조. 아리셀 화재는 그 구조의 민낯을 세상에 드러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죽음을 갈랐다

비상구 문을 열 수 있는 ID카드는 정규직에게만 있었다. 그 한 장의 차이가 생사를 갈랐다.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이 안전권의 차별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이 사고로 너무도 분명하게 증명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지금 어디쯤 있나

아리셀 1심 판결은 한국 산업재해 역사에서 분명한 전환점이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심이 대폭 감형하면서 그 의미가 크게 퇴색됐다. 검찰의 상고 여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실질적인 무게를 결정할 것이다.

23명의 죽음이 무엇을 바꿨는지, 아직 판결은 끝나지 않았다.